영화 산업을 오랫동안 지탱해온 중심에는 항상 ‘중간 규모 영화’가 있었다. 대형 블록버스터처럼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독립영화처럼 소규모도 아닌 작품들이다. 배우의 인지도는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고, 장르적 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노리며, 흥행과 완성도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해왔다. 한때 이 영화들은 극장가의 가장 안정적인 축이었다.
그러나 OTT 시대에 들어서며 이 중간 규모 영화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극장에서는 대작에 밀리고, OTT에서는 더 자극적인 시리즈물이나 글로벌 콘텐츠에 묻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왜 가장 ‘무난하고 안정적이던’ 영화들이 가장 먼저 설 자리를 잃게 되었을까.

극장의 기준이 바뀌었다
극장은 더 이상 모든 영화를 품는 공간이 아니다. 관객 수가 줄어들면서 극장은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관객을 확실하게 불러올 수 있는 영화, 즉 대규모 자본과 확실한 화제성을 갖춘 작품 위주로 상영관을 배정한다.
이 과정에서 중간 규모 영화는 애매한 위치에 놓인다. 블록버스터처럼 ‘극장에서 꼭 봐야 할 이유’를 만들기에는 스케일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소수 관객을 대상으로 한 독립영화처럼 명확한 정체성을 갖추기도 어렵다. 결국 상영관 확보부터 어려움을 겪게 된다.
OTT는 중간 규모 영화를 환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OTT가 중간 규모 영화의 대안이 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다르다. OTT 플랫폼은 개별 영화보다는 지속적인 체류 시간을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선호한다. 시리즈물, 프랜차이즈, 화제성이 강한 작품이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한 편으로 완결되는 중간 규모 영화는 플랫폼 입장에서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기 어려운 콘텐츠다. 화려한 장르적 설정이나 강력한 IP가 없는 경우,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 힘들고 자연스럽게 노출에서도 밀려난다.
제작비 구조의 압박
중간 규모 영화가 가장 크게 흔들리는 지점은 제작비 구조다. 과거에는 이 정도 규모의 영화도 극장 흥행을 통해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관객 수 감소와 티켓 가격 부담으로 인해 같은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제작비를 줄이자니 완성도가 흔들리고, 배우 캐스팅을 낮추자니 마케팅이 어려워진다. 반대로 제작비를 유지하면 리스크가 커진다. 이 딜레마 속에서 중간 규모 영화는 점점 제작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관객의 선택 기준 변화
관객 역시 변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선택할 때, 관객은 이제 ‘확실한 경험’을 원한다. 압도적인 스케일이 있거나, 강한 화제성을 지닌 작품이 아니면 굳이 극장을 찾지 않는다.
중간 규모 영화가 제공하던 정서적 안정감과 완성도는 이제 OTT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관객은 “이 영화는 집에서 봐도 괜찮다”고 판단하는 순간, 극장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 판단이 누적되면서 중간 규모 영화는 점점 극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영화다운’ 영화들
흥미로운 점은 중간 규모 영화가 사라질수록, 관객들이 그 부재를 체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극적인 콘텐츠 사이에서, 한 편의 완성된 이야기와 여운을 남기는 영화에 대한 갈증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중간 규모 영화는 일상의 감정, 사회적 고민, 인간관계의 미묘한 균열을 가장 영화답게 담아내던 영역이었다. 이 영화들이 줄어든다는 것은 영화 산업이 점점 양극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생존 방식은 가능한가
완전히 사라질 것처럼 보이던 중간 규모 영화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극장과 OTT를 동시에 고려한 제작, 특정 관객층을 명확히 설정한 기획, 해외 플랫폼과의 협업 등이 그 예다.
또한 영화제와 OTT 공개를 연계하거나, 장기적으로 재평가될 수 있는 작품을 목표로 하는 전략도 등장하고 있다. 단기 흥행보다는 지속적인 소비를 염두에 둔 접근이다.
산업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존재
중간 규모 영화는 영화 산업의 완충 지대다. 신인 감독과 배우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자, 관객이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통로였다. 이 영역이 사라지면 산업 전체의 다양성은 급격히 줄어든다.
OTT 시대에 중간 규모 영화가 다시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극장과 플랫폼 모두의 역할 재정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관객 역시 영화 선택에 있어 조금 더 다양한 기준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중간 규모 영화의 위기는 단순히 하나의 장르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영화가 어떤 균형 위에서 존재해왔는지를 되묻는 질문이며, 앞으로 영화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