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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감독들은 여전히 극장 개봉을 포기하지 않는가

by 잘버는염소 2026. 1. 9.

OTT 플랫폼이 영화 유통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감독들은 여전히 극장 개봉을 중요하게 여긴다. 현실적으로 보면 OTT 직행은 제작비 회수와 노출 면에서 훨씬 안정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감독들이 극장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관성이나 낭만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과 창작자의 정체성이 깊게 연결되어 있다.

극장은 영화 언어가 완성되는 공간

영화는 처음부터 극장을 전제로 만들어진 예술이다. 화면 비율, 카메라의 움직임, 사운드 디자인, 편집의 리듬까지 모든 요소는 어두운 공간에서 대형 스크린과 함께 작동하도록 설계된다. 감독에게 극장은 단순한 상영 장소가 아니라, 영화 언어가 온전히 구현되는 최종 무대다.

OTT 환경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축소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작은 화면, 이어폰이나 TV 스피커로 전달되는 사운드는 감독이 의도한 감각적 경험을 온전히 전달하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감독들은 “내 영화가 가장 영화답게 보이는 곳은 여전히 극장”이라고 말한다.

첫 인상이 만드는 영화의 정체성

영화의 첫 공개 방식은 작품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극장 개봉은 영화에 ‘이것은 영화다’라는 정체성을 부여한다. 반면 처음부터 OTT로 공개된 작품은 종종 드라마나 콘텐츠 중 하나로 인식되며, 영화로서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기도 한다.

감독들은 이 차이를 매우 민감하게 인식한다. 극장에서 처음 관객과 만난 영화는 이후 OTT로 이동하더라도 그 출발점이 다르다. 관객의 기억 속에서도 “극장에서 봤던 영화”와 “집에서 보던 콘텐츠”는 다른 무게로 남는다.

관객과의 집단적 경험

극장은 개인의 공간이 아니라 집단의 공간이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웃고, 숨죽이고, 같은 장면에서 감정을 공유하는 경험은 영화만이 제공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적 체험이다. 감독들은 이러한 집단적 반응 속에서 자신의 영화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확인한다.

OTT에서는 관객의 반응이 숫자와 데이터로만 남는다. 시청 시간, 완주율, 클릭 수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영화가 남긴 감정의 깊이를 체감하기 어렵다. 극장에서 터지는 웃음, 흐르는 침묵, 엔딩 크레딧 후의 정적은 감독에게 작품에 대한 확신과 다음 이야기를 만들 힘을 준다.

평가 구조와 커리어의 문제

영화 산업에서 극장 개봉은 여전히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동한다. 영화제 출품, 평론의 평가, 감독의 필모그래피 정리 과정에서 극장 개봉 여부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특히 작가주의 감독이나 신인 감독에게 극장 개봉은 자신을 증명하는 공식적인 통과의례에 가깝다.

OTT 오리지널 작품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감독들은 극장 개봉작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싶어 한다. 이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극장 개봉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중요한 점은 극장 개봉이 더 이상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의 극장은 영화의 출발점에 가깝다. 극장에서 처음 공개된 후 OTT로 이동하며 더 넓은 관객과 만나는 구조는 점점 일반적인 흐름이 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극장 개봉은 영화에 첫 호흡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비록 짧은 상영 기간일지라도, 그 경험은 영화의 서사와 이미지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결국 감독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감독들이 극장 개봉을 포기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콘텐츠가 아니라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소비되는 영상이 아니라, 경험되는 예술이라는 믿음이 여전히 존재한다.

OTT 시대에도 극장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극장은 감독에게 영화가 영화로 존재할 수 있는 마지막 증거이자, 관객과 가장 깊게 만나는 장소다. 그래서 극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감독들 역시 그 공간을 쉽게 떠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