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20년작 테넷(Tenet)은 개봉 당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문장으로 유명해졌다. 이 말은 단순한 홍보용 문구가 아니라, 영화 자체의 본질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테넷은 시간을 역행시키는 인버전(Inversion)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관객에게 전례 없는 체험을 제공하는 영화다. 단순히 시간을 거꾸로 움직이는 장면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가 교차하는 세계를 철저하게 계산해 시각화한 과감한 시도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압도적이었다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테넷은 스토리, 구조, 영상, 액션 모두가 복잡하게 intertwining되어 있으며, 관객에게 능동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단지 난해함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테넷은 놀란이 오랫동안 구축해온 서사적 집착, 시간에 대한 탐구, 블록버스터적 스케일이 정점에 이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 시간을 되감고 넘어서는 비밀 작전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이름 없이 프로타고니스트로 불린다)이 국제 테러를 막기 위해 참여한 작전에서 포로로 잡히는 장면이다. 그는 목숨을 걸고 정보를 보호한 대가로 테넷이라는 수수께끼 조직에 스카우트된다. 그곳에서 그는 시간의 인버전 기술을 처음 마주한다. 즉, 사물이나 사람의 엔트로피를 뒤집어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만드는 기술이다. 주인공은 이 기술이 미래에서 보내진 것이며, 미래인들이 현재 인류를 멸망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들의 목적은 과거를 파괴해 미래를 구원하는 것. 이 위험한 계획의 중심에는 러시아 무기상 안드레이 사토르가 있다. 그는 미래와 통신하며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고, 알고리즘이라는 세계 파괴 장치를 완성해가고 있다. 영화는 이렇게 시간이 앞으로 흐르는 존재와 뒤로 흐르는 존재가 동시에 충돌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주인공은 닐과 함께 사토르의 시간 역전 작전을 막는 템포럴 핀서(시간의 협공) 작전을 펼치게 되고, 과거,현재,미래가 접히는 듯한 절정의 전투가 이어진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 테넷의 창립자이며, 닐이 미래에서 보낸 동료라는 사실을 암시적으로 깨닫는다.
2. 정체성과 시간의 아이러니로 엮인 인물들
프로타고니스트(The Protagonist) : 존 데이비드 워싱턴
특징적인 점은 주인공에게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선택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존재이자 미래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루프의 기점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워싱턴의 연기는 절제되어 있지만 강력하며, 복잡한 서사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무게감을 부여한다.
닐(Neil) : 로버트 패틴슨
닐은 영화 내내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인물이다. 그는 주인공보다 모든 사실을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유는 극 후반에 드러난다. 닐이 말하는 우린 오래된 친구야, 넌 아직 모르겠지만이라는 대사는 영화 전체를 다시 보게 만드는 중요한 열쇠다.
패틴슨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인버전이라는 복잡한 설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캣(Cat) : 엘리자베스 데비키
사토르의 아내로, 영화의 감정적 축을 담당한다. 그녀는 사토르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과 아들을 구하려고 한다. 냉혹한 서사 속에서도 인간적 따뜻함과 고통을 드러내며, 영화가 차갑기만 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준다.
사토르(Andrei Sator) : 케네스 브래너
냉전기 러시아를 상징하는 듯한 강압적 인물이다. 미래와의 통신을 통해 절대적 권력을 쥐고 있으며, 자신의 죽음과 동시에 알고리즘을 발동시키려 한다. 브래너의 연기는 잔혹함과 허무주의를 동시에 표현하며 극 전체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3. 시간 구조를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대규모 실험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시간이 테마다.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가 모두 시간의 구조를 연구했다면, 테넷은 그 결정체다. 이 영화의 제작 의도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시간을 뒤집을 수 있는가에 대한 영화적 실험
놀란은 실제 촬영에서 시간 역전 장면을 만들기 위해 배우들의 동작을 하나하나 역재생으로 훈련시켰다. 폭발도 디지털이 아닌 실제로 건물을 폭파한 뒤, 동시 역행 화면을 촬영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즉, 이 영화는 시각효과보다 물리적 연출에 집중해 리얼리티를 확보했다.
2) 세계 구조를 퍼즐처럼 쌓아올리는 서사
놀란은 관객이 장면의 의미를 영화가 끝난 후에야 완전히 이해하도록 설계했다. 예를 들어, 초반에 잠깐 지나갔던 장면이 후반에 역재생된 형태로 다시 등장하는 식이다. 영화 전체가 마치 하나의 타임루프처럼 구성돼 있어, 시간이라는 개념이 곧 이야기 구조가 된다.
3) 인간의 선택과 희생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
영화 속 주인공과 닐의 관계는 단순한 스파이의 협업이 아니다. 주인공은 미래에서 만든 조직이 과거의 자신에게 미션을 주는 구조이며, 닐은 미래의 주인공이 보낸 인물이다. 즉, 이 영화는 시간의 역행보다는 책임과 선택의 무게를 다루는 작품이다.
4. 복잡해도 빠져드는 압도적 재미
1) 시간 액션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적 쾌감
총알이 되돌아오고, 차가 사고 후 다시 복원되며, 사람이 거꾸로 뛰어가는 장면 등은 기존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장면들이다. 특히 회전문(턴스타일)을 통한 시간 전환은 영화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2) 퍼즐을 맞추듯 즐기는 구조적 재미
영화는 한 번에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볼수록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진다. 관객이 스스로 퍼즐을 맞추는 경험은 테넷을 단순한 블록버스터가 아닌 지적 유희성 높은 작품으로 만든다.
3) 음악과 연출이 주는 거대한 스케일
루드비그 고란손이 만든 사운드트랙은 박동 같은 리듬으로 긴장감을 유지하고, 역행 사운드를 음악적으로 변형해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여기에 놀란 특유의 IMAX 촬영 방식이 더해져 장면 하나하나가 압도적이다.
결론 :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영화, 끝나야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
테넷은 난해함 때문에 호불호가 갈렸지만, 그만큼 오랫동안 회자되는 영화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생각, 해석, 경험을 요구한다. 내용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왜 이런 장면이 필요한지, 어떤 의미를 암시하는지, 다시 떠올릴수록 새로운 실마리가 등장한다. 놀란의 테넷은 결국 시간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미래를 만드는지에 대한 철학적 영화다. 혼란스럽지만 매혹적이며, 냉철하지만 뜨겁다. 한 번 보면 궁금해지고, 두 번 보면 퍼즐이 맞춰지며, 세 번 보면 숨겨진 감정까지 느껴지는 작품. 그 복잡함 자체가 테넷의 진짜 매력이다.